
말랄라 유사프자이, 잘 알려지지 않은 9가지 순간
우리가 아는 말랄라는 “탈레반의 총격을 이겨낸 소녀”,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거대한 타이틀 속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 뒤에는, 훨씬 더 섬세하고 인간적인 장면들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교과서에 잘 안 나오는, 그러나 그녀를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1. ‘굴 마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첫 글을 쓰다
11살의 말랄라는 이미 익명 칼럼니스트였습니다.
탈레반이 여학생의 등교를 막고 학교를 폭파하던 시기, 그는 BBC 우르두에 ‘굴 마카이(Gul Makai)’라는 필명으로 스와트 계곡의 일상을 기록합니다. 이 이름은 파슈툰 민담 속 여주인공에서 따온 것. 그녀는 직접 손으로 일기를 써서 현지 기자에게 건네고, 그 글은 스캔되어 BBC에 올라가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세계에 전해졌습니다.

2. ‘슬픈 아이’라는 이름, 그리고 할아버지의 역설적인 축복
‘말랄라’는 아프간의 영웅 말라라이에서 온 이름이자, 파슈토어로 ‘슬픈, 애통한’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가족은 이 의미를 비틀어,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가 되라”는 축복으로 불러주었습니다. 이 상반된 상징성은 훗날, 폭력 속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 말랄라의 태도와 겹쳐집니다.
3. 초등학생 때 이미 “정치 연설”을 하다
많은 사람은 2012년의 총격 사건으로 말랄라를 처음 알았지만, 실제로 그녀는 2008년, 11살의 나이에 페샤와르 언론인클럽에서 공개 연설을 합니다.
“어떻게 탈레반이 우리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을 수 있습니까?”
이 연설은 지역 언론에 보도되며, 어린 소녀를 지역의 목소리 있는 정치 행위자로 등장시킵니다.

4. 헤나 대신 수학 공식을 그리던 소녀
말랄라는 노벨 평화상 연설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친구들이 축제 날 손에 헤나로 꽃무늬를 그릴 때, 자신은 수학 공식을 써넣었다고요.
전통적 아름다움의 상징 위에, 배움을 향한 열망을 새기던 한 소녀. 이 짧은 장면은 말랄라의 ‘공부 덕후력’과, 지식을 아름다움으로 느끼던 독특한 감각을 잘 보여줍니다.

5. “노벨 상금은 제 통장이 아니라, 학교로 갑니다”
2014년 노벨 평화상 상금을 포함해 들어온 큰 상금들에 대해, 말랄라는 “교육을 위해 쓰겠다”고 공개 선언합니다. 실제로 스와트와 샹글라 지역의 학교 설립과, 말랄라 펀드를 통한 각국 교육 프로젝트에 그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단지 상징적 인물이 아니라, ‘돈의 방향’을 명확히 교육으로 지정하는 실무형 리더라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6. 오바마를 만났을 때, 셀카보다 드론을 먼저 말한 16살
2013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를 만났을 때,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장면은 “감사 인사와 기념사진”이었죠.
하지만 말랄라는 미국의 드론 공격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에게 주는 공포와 분노를 직접 지적했습니다. 이 내용은 이후 발표된 성명과 보도에서 확인됩니다.
10대 소녀가 초강대국 대통령에게 “당신들의 정책이 폭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이건 상징이 아니라, 실제 정치적 개입이었습니다.

7. ‘집에서는 잔소리 많은 누나’라는 자기소개
노벨 연설에서 말랄라는 “아마 동생들과 아직도 싸우는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일 것”이라고 농담합니다.
세계 언론이 떠받드는 상징이지만, 집에서는 동생들이 놀리고 싸우는 평범한 누나. 이 유머 감각 덕분에, 그녀의 이야기는 영웅담을 넘어 ‘우리랑 비슷한 사람’의 성장기로 느껴집니다.

8. 의사가 될까, 정치인이 될까, 그리고 ‘미래의 파키스탄’
어릴 적 말랄라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는 “너는 정책을 바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며 정치와 리더십을 꿈꾸게 합니다. 그 영향 속에서, 말랄라는 “언젠가 파키스탄을 이끄는 위치에 서는 것”도 가능성으로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녀의 진로 고민은 언제나 “나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까”와 연결돼 있습니다.
9. 이제는 ‘여성 스포츠’에 투자하는 사람
최근 말랄라는 남편 아세르 말릭과 함께 여성·소녀 스포츠에 투자하는 ‘리세스(Recess) / Recess Capital’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교육의 연장선에서, 운동장과 경기장까지 여성의 공간을 넓히려는 시도입니다.
총알을 이겨낸 한 소녀가, 이제는 학교부터 스포츠 산업까지 규칙을 다시 쓰고 있는 셈이죠.

정리하며: ‘불쌍한 피해자’가 아닌, 자기 서사를 쥔 사람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종종 “테러의 피해자”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실제의 그녀는:
- 10대 이전부터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고 발언했고
- 세계 권력자들을 향해 직접 반론을 던졌으며
- 상징으로 받은 자원(노벨 상금, 명성)을 다시 구조를 바꾸는 데 투입하고
- 지금도 교육, 미디어, 스포츠 등 새로운 영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